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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양필도(梁苾道)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667(현종 8)∼1735(영조 11)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율담(律潭)이다. 보은군 가습(可習)에서 회남면 남대문리로 옮겨온 양경(梁鯨)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양응인(梁應寅), 아버지는 양효안(梁孝顔)이다. 부인은 단양우씨로 우하길(禹夏吉)의 딸이다.

5세에 모친상, 9세에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어육(魚肉)을 먹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초상을 치렀다고 한다. 자손을 충효(忠孝)로 가르치고, 회남면 신곡리에 사재를 털어 강당(講堂)을 세웠으며, 흥인사(興仁祠)를 건립하여 우암 송시열의 영정(影禎)을 봉안하고 제향(祭享)하였다. 이후 마을 이름을 흥인리(興仁里) 또는 영당(影堂)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을은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완전히 수몰되었다. 묘소는 회남면 신곡리에 있다.

키워드 남원양씨, 율담, 흥인사, 회남면 신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