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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협(李莢)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665(현종 4)∼1732(영조 8)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서백(瑞伯), 호는 양졸당(養拙堂)이다. 고조는 이언(李彦), 증조는 이정(李晶), 할아버지는 이명홍(李命弘), 생부는 이경만(李慶晩), 생모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규태(宋圭泰)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수만(李守晩)에게 양자로 들어갔으며,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로 최주석(崔柱石)의 딸이다. 보은읍 길상리에서 태어났으며, 수암 권상하, 장암(丈巖) 정호(鄭澔), 단암(丹巖) 민진원(閔鎭遠)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고, 시(詩)와 예(禮)를 가르치는 집안에서 자랐음에서 항상 부족하다고 여기며 호를 ‘양졸당’으로 짓고 학문에 탐구에 열중하였다. 스승 권상하가 이런 그를 위해 “염계(濂溪) 선생은 태극(太極)의 뜻을 극도로 천명하여 실로 공맹(孔孟)의 도통(道統)을 계승하였는데도 일찍이 졸부(拙賦)를 지어 자신의 뜻을 말하였다. 그런데, 지금 서백(이협)도 문학을 열심히 닦았기에 의당 초야에 묻혀 버릴 수 없는데도 역시 졸(拙)로 당호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염계 선생의 뜻이 아니겠는가. 더욱 원대한 학업에 힘써서 사우(士友)들의 소망을 저버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라고 「양졸당기(養拙堂記)」를 써 주기도 하였다.

부모를 모실 때는 반드시 '소학(小學)'과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효도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었으며,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는 항상 관대하였다고 한다. 또한 집안이 가난하여 고을 수령이 도움을 주려하면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나 다만 친구인 송상기(宋相琦), 김순행(金純行)의 도움만은 사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후(死後) 학행으로 천거 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장안면 구인리에 있다.

키워드 예안이씨, 양졸당, 보은읍 길상리, 권상하, 정호, 민진원, 장안면 구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