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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담(李橝)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629(인조 7)∼1717(숙종 43)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하경(廈卿), 호는 사은당(四隱堂)이다. 고조는 현감 이수(李鐩), 증조는 봉사(奉事) 이하수(李河壽), 할아버지는 첨추(僉樞) 이발(李勃), 아버지는 이유신(李裕身),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로 생원 오문지(吳雯之)의 딸이다. 장단(長湍, 지금의 경기도 장단군)의 석강리(石江里)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무립(李茂立)의 딸이다. 처음에 김각(金㙾)에게 수학하였고, 1648년(인조 26) 사마초시(司馬初試)에 합격한 뒤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1년(현종 12)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고, 1673년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에 임명되어서도 부임하려 하지 않았으나 박세채(朴世采) 등 친구들이 권하여 출사하였다. 1675년(숙종1) 스승인 송시열이 덕원에 유배되자 그 억울함을 상소하였으며, 1679년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송시열이 석방될 때 그도 풀려났다.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1686년(숙종 12) 부름을 받아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에 이어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1687년 소론들의 탄핵으로 벼슬을 물러났으며 1689년(숙종 15) 송시열이 사사(賜死)되자 낙향하였다. 1707년에 특별히 통정대부로 품계가 승격되고, 1709년(숙종 35)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집안과 함께 보은으로 내려와 석천암(石泉菴) 등에서 산수와 더불어 생활하였으며, 이때 장졸와(藏拙窩) 김학(金㶅) 등과 도의로 서로 사귀었다. 1716년 가벼운 병세가 있더니 이듬해 점차 심해져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양주(楊州) 안흥리(安興里)에 장사지냈다.

키워드 전의이씨, 하경, 사은당, 김각, 송시열, 송준길, 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