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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정경흠(鄭慶欽)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620(광해군 12)~1678(숙종 4)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문인․서화가(書畵家)로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선숙(善叔), 호는 육오당(六五堂)이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정응두(鄭應斗), 아버지는 정이직(鄭以直), 어머니는 태학생 이영례(李榮禮)의 딸이다. 부사 정이중(鄭以重)와 박정진(朴廷璡)의 딸 상산박씨의 양자가 되었다. 부인은 덕수이씨(德水李氏)로 이조참판과 신천군수를 지낸 이조(李稠)의 딸이며,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50년(효종 1)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친아버지와 양아버지의 상을 연이어 당하여 1676년(숙종 2) 양아버지의 상을 치른 뒤 벼슬할 뜻을 버리고 보은(報恩)에 우거하였다. 예론(禮論)에 밝아서, 종실이면서 친척인 자가 시험 삼아 기해복제(己亥服制)에 대하여 묻자, 조목조목 비판하여 그를 성나게 한 일로 유명하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는데, 특히 인물․난초․포도․매화․대나무 등을 즐겨 잘 그렸다. 또한 여러 사람의 도지(圖誌)를 참고하여 <황여도(皇輿圖)>․<동여도(東與圖)>를 편찬하였다. 현재 <황여고실(皇與攷實)>이 전한다.

남인이 집권한 뒤에는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말년에는 주역에 심취하였고, 지행(知行)이 있다는 칭송을 들었다. 1678년 보은의 집에서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정유복(鄭維復)․정유점(鄭維漸)은 포도를, 정유승(鄭維升)은 인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키워드 하동정씨, 육오당, 서화가, 황여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