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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곽추(郭樞)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328~1405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청주
자료출처 청원군지

고려조의 문신. 본관 청주. 호 추암(秋巖)․앙천재(仰天齋). 청주시 북이면 추학리 출신. 부친은 중서문하성 평장사 침(琛)이다. 1360년(공민왕 9)에 국자진사로 23세로 문과에 급제하고 대성(臺省)에 이르렀다. 포은 정몽주보다 한 살 아래이면서도 함께 공부했으며 함께 급제하고 함께 벼슬한 사이로, 남달리 우정이 깊었다. 1362년(공민왕 11)에 그가 한림을 사퇴하고 낙향할 때 포은이 준 시가 유명하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고, 1378년 밀직사사에 전보되었다. 1387년에는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이성계의 혁명 후 정몽주가 참화를 당하니 동지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정당문학․보문각 대제학을 삼았으나 고사하고 받지 않았다. 1401년(태종 1)에 좌찬성․대제학․호조판서를 삼았으나 받지 않았다. 1405년(태종 5)에 장단 십천교(十川橋)에 은거하다가 별세하니 향년 68세였다. 태종이 부음을 듣고 애석히 여겨 근신(近臣)을 보내어 제사하였다. 그 글에 “나라에 사람이 없으니 그 누구와 의논하여 정사를 돌볼까?”하는 구절이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키워드 청주곽씨, 고려 문신, 두문동, 장단 십천교 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