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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김익(金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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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학자 |
시대/생몰년 | 1614(광해군 6)~1674(현종 15)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보은 |
자료출처 | 보은군지 |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거(重擧), 호는 부지촌(不知村)이다. 할아버지는 노성현감 김가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덕민(金德民),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로 오희문(吳希文)의 딸이다. 김덕민의 다섯째 아들로 보은읍 종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은 감역(監役) 조의현(趙義賢)의 딸이다.
병자호란 뒤 과거를 포기한 중형(仲兄) 김용(金鎔)을 따라 벼슬을 단념하였다. 뒤에 유일(遺逸)로 전설사별검(典設司別檢)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당시의 송시열과 같은 학식 깊고 이름난 유학자들과 교유하며 일생을 살았다. 묘소는 마로면 적암리에 있다.
키워드 | 경주김씨, 중거, 부지촌, 김용, 마로면 적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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