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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용(金鎔)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605(선조 38)∼1645(인조 23)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범(子範), 호는 노정(鷺亭)이다. 할아버지는 노성현감 김가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덕민(金德民),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로 오희문(吳希文)의 딸이다. 김덕민의 5형제 중 둘째로 보은읍 종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627년(인조 5) 진사시(進士試)에 2등 10위로 합격하였는데 형 김옥, 아우 김경과 함께 합격하였다. 벼슬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시직(侍直)에 이르렀다. 절의를 지켜 올바르게 사는 것을 수신(修身)의 근본으로 삼았는데 대과(大科)를 준비하다가 병자호란으로 과거를 폐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속리산면 중판리 노산(鷺山) 아래 언덕에 노정(鷺亭)을 지어 산수를 즐기고 후학들과 강론하며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보은읍 성족리에 있다.

키워드 경주김씨, 보은읍 종곡리, 노정, 보은읍 성족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