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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경세(金景世)
분류 충신
시대/생몰년 1600(선조 33)∼1636(인조 14)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 인조 때의 충신으로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현보(賢甫), 호는 계은(溪隱),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아버지는 김귀중(金貴中),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명겸(韓明謙)의 딸이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 옥동(玉洞)에서 출생하였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자라면서 아침저녁으로 성묘하여 절하던 곳에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 주부(主簿)에 이르렀으나 1627년 정묘호란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가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참전할 때 19명의 의사(義士)와 8백여 명의 의병을 인솔하여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청군과 싸우다 순국하였다. 그의 부인 순흥안씨가 남편의 출전에 앞서 입고 갈 옷에 색실로 수를 놓아 표시해 두었는데 이것으로 청군이 물러가자 남편의 시신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824년(순조 24) 그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春秋館) 수찬관(修撰官) 규장각(奎章閣) 직제학(直提學)에 증직되고, 그의 부인은 숙부인(淑夫人)에 증직되었다. 1826년에는 다시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에 증직되어 상산군(常山君) 봉해졌다. 부인 또한 정부인(貞夫人)에 올랐다.

묘소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옥동리에 있으며, 정문은 보은군 산외면 산대리에 있다.

키워드 금녕김씨, 정세규, 의사, 진천 덕산면 옥동리, 보은 산외면 산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