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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연(金渷)
분류 은사
시대/생몰년 1598(선조 31)∼1637(인조 15)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은사(隱士)로 본관은 영산(永山), 자는 제보(濟甫), 호는 성곡(省谷)이다. 괴애(乖厓) 김수온(金守溫)의 8세손이며, 할아버지는 김염근(金廉謹),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김호덕(金好德), 어머니는 은진송씨로 송응기(宋應期)의 딸이다. 부인은 단양우씨(丹陽禹氏)로 도사(都事) 우대유(禹大有)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송씨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에 밝았으며, 사계 김장생․우복 정경세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시면서 항상 뜻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배다른 형인 김면(金沔)과 우애가 돈독하였다고 한다. 송촌(松村) 채종길(蔡宗吉)과 도의(道義)로 사귀었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채종길이 의병을 모집하여 그곳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읍재(邑宰) 또한 공신의 자제들을 모아 근왕병(勤王兵) 모집하였는데 그는 이미 채종길에 의진에 가담하고 있어 참여하지 못하였고 뒤에 군법에 의해 잡혔다. 이때 잡힌 자들이 모두가 울면서 음식을 먹지 않았으나 그는 홀로 태연히 “모두가 운명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1632년(인조 10) 학행(學行)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를 제수받았으며, 1634년(인조 12)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이귀(李貴)의 천거로 금오랑(金吾郞)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뒤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다. 저서로 『성곡집(省谷集)』 2권이 있다.

키워드 영산김씨, 채종길, 이괄의난, 성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