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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정(李晶)
분류 은사
시대/생몰년 1586(선조 19)∼1643(인조 21)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은사(隱士)로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휘원(輝遠), 호는 송재(松齋)이다. 세종 때의 무신․과학자인 이천(李蕆)의 7세손이며, 할아버지는 교수(敎授) 이경종(李擎宗), 아버지는 1555년 보은현감 성제원과 함께 상현서원을 창건한 진사 이언(李彦),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창문(金彰文)의 딸, 부인은 상락김씨(上洛金氏, 구 안동김씨)로 주부 김봉서(金鳳瑞)의 딸이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1610년(광해군 2) 식년시에서 생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있으면서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상소하였다. 광해군 때 정인홍(鄭仁弘)의 무리가 폐모론(廢母論)을 주창하며 일을 함께하자고 요청하자 거절하고 곧 보은 길상리 집에 은거하였다. 이후 학문에 힘쓰고 아침저녁으로 한결같이 부모의 산소에 성묘하니 향리에서 효자라 이르고 덕의(德義)를 흠모하였다.

뒤에 상현서원(象賢書院)의 원장으로 있을 때 1637년 청나라에 끌려가 참형당한 척화파 삼학사인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 오달제(吳達濟)의 노부모들이 의지할 곳 없이 흩어져 죽음에 이를 지경이 되자 각지에 통문을 발송하여 이들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 이때 그의 집안사람인 이원방(李元芳), 사인(士人) 김국한(金國翰), 이정약(李廷若) 등이 적극 나서서 이 일을 도와 경상도 71주에 뜻을 알리자 그 의로움에 모두 응하여 토산물과 포목(布木) 수백 필 등이 답지하여 그 가족들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묘소는 장안면 오창리에 있다.

키워드 예안이씨, 효자, 상현서원, 장안면 오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