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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은진송씨(恩津宋氏, 김호덕의 처)
분류 효부
시대/생몰년 1571(선조 4)∼1662(현종 3)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 여성으로 아버지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와 어머니 병조판서 이윤경(李潤慶)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나 보은현에 살고 있는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수온(金守溫)의 7대손 김호덕(金好德)과 결혼하였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고모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행동이 민첩했으며 시화백가(詩畵百家)에 통달하였다. 7세 때의 모화관(慕華館)에서 군대(軍隊)를 검열(檢閱)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구경하기를 청하니 2천 자가 넘는 책을 주고 다 외면 허락한다고 하자 그것을 밤새 외워 아버지를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1592년 김호덕과 혼인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강원도 영월로 피난하였다가 시댁인 보은에 이르렀다. 시집온 이후로 시부모 섬기는 일과 친족과 관련된 일, 비복을 부리는 일 등을 모두 적당하게 하고, 전(前) 부인의 아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여 집안이 매우 편안하게 거느렸다. 또한 큰아들 김연(金渷)을 잘 가르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의금부 도사에 제수되었는데 이는 김수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 김호덕의 상을 당하여서는 80세가 되었는데도 예를 따라 상례를 치렀으며 이후에도 일상생활에 항상 예의범절을 지켰으며, ‘삼강행실(三綱行實)’ 등의 글을 읽고 여공(女功, 여자가 하는 길쌈 등의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다.

키워드 은진송씨, 김호덕, 김연, 송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