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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성발(金聲發)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569(선조 2)∼1642(인조 20)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시(景時), 호는 창구당(滄丘堂)이다. 판도판서 김장유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기묘명현 충암 김정(金淨), 할아버지는 강릉참봉(康陵參奉) 김철보(哲葆), 아버지는 유곡찰방(幽谷察訪) 김익련(金益鍊), 어머니는 고성남씨(固城南氏)로 남응로(南應老)의 딸이며,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인서(柳仁瑞)의 딸이다. 조선 중기 시인인 백곡 김득신의 장인이다.

1605년(선조 3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고, 그 뒤 승정원 주서․시강원 설서․성균관 전적․사헌부 감찰․병조좌랑․공조좌랑․사간원 정언․지평 거쳐 1611년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나갔다. 이때 정온(鄭蘊)이 남의 말을 듣고 잘못 탄핵한 일이 있었으나 원망하지 않았고 뒤에는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정온이 늘 사람들에게 ‘오늘날에 드문 선비’라고 극찬하였다.

인조반정 후에는 서산군수․사헌부 장령․시강원 필선․상의원정․장악원정․제용감정․사옹원정․승문원 판교․원주목사․사도시정․종부시정․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1637년에는 삼척부사로 부임하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왔다. 이후 증조부 김정이 예전에 노닐던 청주의 창구(滄丘)에 집을 짓고 지내다가 74세로 세상을 떠나자 보은군 회인에 장사지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일찍이 소무원종공신(昭武原從功臣)에 녹훈된 것으로 인해 승정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키워드 경주김씨, 김득신, 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