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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려(李勵)
분류 의병
시대/생몰년 1567(명종22)∼1592(선조25)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선조 때 의병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득지(得之), 호는 누산(樓山)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이탁(李鐸), 아버지는 충청수사(忠淸水使) 이회수(李淮壽),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예빈시 별좌(別坐) 김천주(金天宙)의 딸이다.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그의 집안 대대로 영동(永同)에 살았으나, 그는 외가인 보은 누청리에서 출생하여 자랐다.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강개(慷慨)한 성품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이 돈독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후일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어 풀려났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스승인 중봉이 의병을 일으키자 김성원(金聲遠), 이언(李彦) 등과 함께 보은읍 누청리에서 의병을 모아 참여하여 청주 전투에서 적을 격파하고, 이어 금산 싸움에서 적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중봉과 함께 순국하였다. 당시 나이 26세였다.

1717년(숙종 43)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증직되고 충신정문이 보은읍 누청리에 김성원과 함께 세워지고 수한면 차정리 후율사(後栗祠)에 제향 되었다.

키워드 전의이씨, 보은 누청리, 의병, 후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