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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성원(金聲遠)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565(명종 20)∼1592(선조 25)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선조 때 학자․의병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구(景久), 호는 송촌(松村)이다. 증조부는 장암(壯菴) 김광(金光)이며, 할아버지는 김숙보(金肅葆), 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김희련(金熙鍊)이다. 원래 아버지 김희련은 충암 김정의 아들 김철보(金哲葆)의 아들이었으나 김숙보에게 입양되었다. 보은읍 성족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행실이 돈독하여 스승인 중봉이 아끼어 타이르기를 “너는 다만 지성(至誠)만 있어도 안 된다. 너는 대현(大賢)의 후예이니 더욱 힘써라.”라고 하였다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이 의병을 모집할 때 참여하여 청주 전투에서 승리하고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조헌, 칠백의병과 함께 장열하게 절의를 지켜 순절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으며 시체를 찾지 못하였다.

현종 때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증직되고, 1717년(숙종 43)에 충절을 기리는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여 보은읍 누청리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수한면 차정리 후율사(後栗祠)에 제향 되었다. 그의 묘소가 보은읍 성족리에 있는데 부인 청도박씨(淸道朴氏) 무덤에 옷과 관을 묻어 놓은 것이다.

키워드 경주김씨, 보은읍 성족리, 의병, 누청리 정문, 후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