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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세근(李世根)
분류 의료인
시대/생몰년 1917~1990
형태
언어
지역 청주
자료출처 청주시지

청주시 용정동에서 태어난 석암(石庵) 이세근은 완산 이씨 문중의 장남으로 태어나 청주중학을 거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2년 남짓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병리학교실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1941년 그만두고 청주상당치과의원을 개업했다. 47년에 사재를 털어 고향(용정리)에 한국 최초의 보건소를 설립 6․25가 발발하기까지 운영했고, 토지개혁이 시행되기 2년 전인 48년에 1백섬지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시가의 반값을 받고 나누어주기도 했다.

6․25 난리 중에는 괴뢰군에게 납치되어 김천방면으로 파송 중 탈출하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괴뢰군에게 납치되어 있으면서도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병들어 위급한 주민들을 위해 약을 빼내는 모험을 해 겁없는 사람이라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다. 수복 후 군에 입대, 57년에 중령으로 제대, 도 보건과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심없고 활달한 성품으로 그의 사회생활은 순탄했는데, 충청북도 도정자문위원장을 10여년 간에 걸쳐 연임하는가 하면 충청북도 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충청북도 교권옹호위원장, 국제라이온즈 309-H 지구 총재,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이 대의원 및 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있는대로의 정성을 다해 지역사회에 헌신했다.

정부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전국에 확대 조직한 민간단체인 청주 민간단체협의회를 만들었으며, 가덕 공원 묘지의 설치를 건의․성사 시키기도 했다. 또한 충북개발기금 40억을 조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랑과 봉사로 일관된 공적을 인정하여 군(軍)에서는 충무무공훈장, 사회생활에서는 함여장(咸與章)을,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는 충청북도문화상을 수상했다.

키워드 이세근, 의료인, 독지가, 민간단체협의회, 충무무공훈장, 함여장, 충청북도문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