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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안후선(安珝善)
분류 독립운동가
시대/생몰년 1892~1936
형태
언어
지역 음성
자료출처 음성군지(2008)

독립운동가로,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에서 출생, 중국 동삼성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이명(異名)은 안야산(安也山)으로, 1919년 2월1일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 후, 1920년 안도현(安圖縣)으로 이동, 대한독립군 편성 때 독립군사령부 조직책으로 활동하고, 1924년 길림성에서 독립군 재건에 활약하며, 자유독립 사상을 고취한 자유가(自由歌)를 작사, 작곡하였다.

「1.사람은 사람마다 이름 가질때/똑같은 자유권을 가지고 왔다/자유권 없으면 살고도 죽는것이니/목숨은 버려도 자유는 못버려/2.배달의 어린이야 어서 자라서/우리들의 자유를 위해 싸워라/자유를 찾던지 우리 몸이 죽던지/끝까지 자유위해 나가 싸워라/3.정의가 무엇이냐 자유 위하여/자유 앗는 원수를 죽임이 정의/정의에 날쎈 칼들며 있는 그날엔/반가운 자유가 내게 오리라」

1930년 한족자치연합회와 생육사(生育社)를 모체로 홍진(洪震)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한국독립당에 가입, 한국독립군의 재무 겸 외교관으로 활동, 1933년 흑달병이 발병하여 치료받던 중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다가, 1936년 1월 향년 45세로 새을 마쳤다.

정부에서 공훈을 기리어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 애족상 수여하였다. (독립운동사 게재내용은 1990년 경기도 수원시 매교동 111-21 안두승 씨 증언)

키워드 독립운동, 자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