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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강석삼(康錫三)
분류 공신
시대/생몰년 18세기 초엽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옥천
자료출처 옥천군지

조선 후기의 무신란 때 공신으로 옥천 사람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강경람(康敬攬)의 현손이다.

1728년(영조 4) 무신란 때 군수 임세겸(林世謙)의 휘하에서 공주(公州)에 이르러 안성(安城)의 승첩을 들었고, 영남으로 말을 달려가자 영남의 적도 역시 평정되었다. 그 일이 창의록에 실려 있다.

『옥천읍지(沃川邑誌)』(1832) 공신조에 “강석삼은 경람(敬攬)의 현손이다. 어려서부터 분개격앙(憤慨激昻)의 뜻이 있었다. 무신란을 당하여 지군사(知郡事) 임세겸(林世謙)이 홀로 성을 지키고 더불어 일을 도모할 자가 없었다. 석삼이 분연이 부모에게 작별하고 곧 그의 휘하에 들어갔다. 대장의 막사에서 계획을 밝히며 분개하여 ‘서생이 얼음 세 자를 갈아 얻으면[書生磨得氷三尺], 사악한 기운을 걷어내듯 어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한다[擬掃妖氣報聖君].’라고 시를 읋었다. 나아가 금영(錦營)에 이르자 안성과 죽산에 승전 첩보가 들리고, 영남으로 말을 달려 나아가자 영남의 적도 역시 평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창의공신(倡義功臣) 2등 공신녹권에 올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분무원종공신녹권』 2등에 강석삼이 있다.

키워드 신천강씨, 1728년 무신란 창의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