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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심덕부(沈德符)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328~1401
형태
언어
지역 충주
자료출처 충주시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득문(得文), 호는 노당(蘆堂) · 허강(虛江)이 라 하고 본관은 청송이다. 이조정랑 심룡(沈龍)의 아들이다. 충숙왕 말에 음관으로 사온직장동정(司醞直長同正)에서 좌우위록사(左右衛錄事)를 거쳐, 공민왕 13년(1364)에 수원부(水原府)의 수령이 되고, 공민왕 말년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우왕 초에 우상시(右常寺)를 거쳐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어 밀직부사(密直副使)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와 강계도만호(江界都萬戶)·의주부원수(義州副元帥)·서해도원수(西海道元帥) 등 요직을 거쳐 우왕 4년(1378)에 정조사(正朝使)로 명에 다녀온 뒤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서해도원수를 겸하여 여러 차례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특히 우왕 6년(1380) 도원수 나세(羅世)와 함께 최무선(崔茂宣)이 만든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우왕 11년(1385)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동북면상원수(東北面上元帥)를 겸하여 북청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고 동년 겨울에 하정사(賀正使)로 명에 다녀온 후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우왕 14년(1388)에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가 되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도왔으며, 창왕을 폐하는 데도 일조하여 공양왕 즉위 후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평양도통사(平壤都統使)에 올랐다. 이듬해 무고로 한때 황해도 토산에 유배되었다. 공양왕 3년(1391)에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으로 왕세자 석(奭)을 따라 명에 다녀온 후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고, 이듬해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조선의 개국을 맞았다. 태조 2년(1393)에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태조 6년(1397)에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고, 이듬해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정종 1년(1399)에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가 이듬해 사직했다. 조선 초에 충주목사로 있을 때 꼿꼿하고 명백한 정사를 보았다. 처음 시호를 공정(恭靖)이라 했다가 뒤에 안정(安定)이라 개정했다.

키워드 심덕부, 청송 심씨, 심룡, 왜구, 최무선, 이성계, 위화도 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