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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태암(金泰巖)
분류 문신
시대/생몰년 1477(성종 8)∼1554(명종 9)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탁이(卓爾), 호는 희암(希菴)이다. 할아버지는 서천군사(舒川郡事)를 지낸 김직손(金稷孫), 아버지는 태안군수(太安郡守)를 지낸 김조양(金調陽)이며, 어머니는 판관 유지신(柳之信)의 딸이다.

타고난 기질이 뛰어났으며 체격이 풍만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평소 사람을 상대할 때는 항상 온화한 기색을 띠고 말이 진실하여 만나는 사람이 모두 좋아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치를 싫어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재산을 풀어 도왔다.

충암(沖庵) 김정(金淨)과 교분이 두터워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며, 구수복(具壽福)․대곡 성운 등과 교유하였다. 1518년 유일로서 천거를 받아 연원도(連原道) 찰방(察訪)을 제수받아 부임하여 공무를 청렴하고 간결하게 수행하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고향 보은으로 돌아와 금적산 아래 은거하며 살았다. 이때 구수복이 기묘사화로 파면된 뒤 보은의 일가붙이 농장에 임시로 머물고 있었는데 김태암이 찾아가 집과 전답을 제공하며 머물러 살도록 주선하고, 10여 년간을 교분을 나누었다.

이후 평생을 산수를 즐기며 살아가다 1554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워드 상산(商山)김씨, 김정, 성운, 기묘사화, 금적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