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 권상하(權尙夏) |
---|---|
분류 | 학자 |
시대/생몰년 | 1641(인조 19) ~1721(경종 1) |
형태 | |
언어 | |
지역 | 제천 |
자료출처 | 제천시지 |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造)·한수재(寒水齋), 본관은 안동, 집의 권격(權格)의 아들이며, 이초로(李楚老)의 외손자이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62년(현종 3)에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675년 송시열이 관작을 추탈당하고 덕원(德源)에 유배되자 청풍의 신중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 이후 연이어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송시열이 남긴 유언에 따라 괴산 화양동(華陽洞)에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을 세워 명나라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을 배향하였다. 만년에는 청풍의 황강(한수면)에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불리우는 제자(한원진, 윤봉구, 이간, 최징후, 현상벽, 한홍조, 윤혼, 채지홍)를 길러냈다. 1721년 병이 나 한수재에서 사망하였으며 충주 북촌 개천동(開川洞) 속곡(東谷)에 장사지냈다. 청풍의 황강서원, 충주의 누암서원(櫻巖書院) 등에서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한수재집』이 있다. 시호는 문순(文純).
키워드 | 권상하, 만동묘, 대보단, 송시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