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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월산(月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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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승려 |
시대/생몰년 | 1912∼1997. 9. 6.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보은 |
자료출처 | 보은군지 |
현대의 불교계의 대표적인 승려로 본관은 경주, 속성은 최(崔)씨, 속명은 종열(鍾烈)이다. 아버지는 최흥규(崔興圭)이며, 어머니는 노(魯)씨이다. 1913년 함경도 신흥에서 태어나 유년기에는 고향 서숙(書塾) 등에서 수학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때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고 1944년 31세에 망월사를 찾아 당시 고승인 금오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이듬해 만공(滿空)을 찾아가 공양주로 지내면서 ‘이 뭣고’ 화두(話頭)를 받았으며, 이후 수덕사 등지에서 수행 정진하던 그는 1948년 문경 봉암사에서 향곡·성철·보문·청담·자운 등과 결사(結社) 수행하며 새로운 불교 수행 풍토를 진작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를 비롯한 당시의 결사 구성원들은 한국 근현대 선종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68년 금오에게서 전법(傳法)의 인가를 받았으며,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1968년, 1978년) 역임하였고, 법주사․신흥사․동화사 등의 명찰에서 주지를 지냈다. 1974년부터 불국사의 주지를 맡아 강원 선원 등을 개설하여 수행도량의 위상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에게 절의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아니듯 승(僧)과 속(俗)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도 둘이 아니었으며, ‘절 앞에서는 돈을 벌고 절 뒤에서는 도를 이룬다.’는 독특한 철학으로 불국사를 영남 굴지의 도량으로 일구었다. 불국사 조실로 오랫동안 수행하다가 1997년 세수 86세, 법랍 55세로 불국선원 염화실에서 입적하였다.
키워드 | 승려, 만주 독립운동, 금오 문하, 법주사 신흥사 동화사 불국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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