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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황하일(黃河一)
분류 동학
시대/생몰년 19세기 말엽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로, 일명 해일(海一)이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보은(報恩)에서 태어났다. 1883년(고종20)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동학(東學)에 입교하였으며, 그 뒤 서장옥(徐璋玉)과 함께 최시형을 보좌하여 포교활동을 하였다. 1885년 관의 탄압을 피하여 경상도 상주(尙州)로 피신하고 있는 최시형의 은신처를 주선 등 북접과도 긴밀한 협조를 하였다. 1880년대 후반에는 전봉준(全琫準)을 서장옥에게 소개하여 동학에 입도시켰다.

1892년 서장옥․서병학(徐丙鶴) 등과 함께 전라북도 삼례(三禮)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벌였으며, 1893년 3월에는 박광호(朴光浩) 등과 광화문복합상소운동(光化門伏閤上疏運動)을 주도하였다. 또 그해에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기치 아래 보은군 장내리(帳內里)에서 개최된 보은취회(報恩聚會)를 최시형 등과 함께 주도하였으며 남접과의 적극적인 연대에 주력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무장(茂長:茂朱)에서 봉기(蜂起)할 때 전봉준․손화중(孫華仲) 등과 더불어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최시형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보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 후 전봉준 등이 공주성(公州城)을 공격할 때 이에 가담하지 않고 김개남(金開南)의 농민군과 함께 청주 병영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후 보은으로 피신하였다. 1895년 관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태(笞) 100대에 유배 3년에 처해졌다.

키워드 동학지도자, 해일, 교조신원운동, 보은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