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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종면(李鍾冕)
분류 독립운동가
시대/생몰년 1867.6.11~1932.3.7
형태
언어
지역 영동
자료출처 영동군지

충청북도 영동(永同) 사람이다. 한말 전기 의병시기부터 의병전쟁에 참전하여 1910년대에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종면은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의 을미개혁을 계기로 봉기한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 후 1907년에는 이인영(李燐榮) 의진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독립의군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의군부는 1913년 9월 임병찬(林炳璨) · 이용순(李溶淳) · 전용규(田鎔圭) 등 유생이나 의병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서울에 독립 의군부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각도에 도순무총장(道巡撫總將) · 각 군에서는 군수(郡守) · 면에는 향장(鄕長)을 두어 내각 총리대신 총독 이하 대소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내고, 일본관헌에게 한국 통치의 곤란함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 한인의 일본의 동지에 굴복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국민에 대하여는 국권회복의 여론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종면은 1914년 4월 경, 독립의군부의 일원으로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 중,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 후 박종식(朴宗) · 이춘산(李春山) 등과 더불어 1915년 8월경부터 12월까지,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帽面) 금계리(金溪里)와 경남 밀양군(密陽郡) 하동면(河東面) 등지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6년 4월4일 공주 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다.

키워드 이종면, 독립운동가, 의병전쟁, 독립의군부, 관동창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