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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김명구(金鳴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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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학자 |
시대/생몰년 | 1882(고종 19)∼1959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보은 |
자료출처 | 보은군지 |
근․현대의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고(聲旱), 호는 학산(鶴山)이다. 일구당(一丘堂) 김가기(金可幾)의 후손이며, 생부는 김주상(金周尙)이고, 큰아버지 김주은(金周殷)에게 입양되었다. 운창(芸窓) 박성양(朴性陽)․계운(溪雲) 김낙현(金洛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을사보호조약 등 나라가 기울어지자 벼슬하기를 단념하고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한일합방이 되자 가난한 이웃의 병든 이들을 구제하고자 한의학(韓醫學)을 연마한 뒤 고향 종곡리를 떠나 선영이 있는 탄부면 매화리로 옮겨 인술(仁術)을 베풀었다. 또한 가난한 이웃의 자제를 모아 훈육(訓育)에 전념하였다.
「상현서원중수기」를 비롯한 그의 문장을 엿볼 수 있는 현판이 있고 저서로 『학산집(鶴山集)』이 있었다. 1972년 문인들에 의하여 매화리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매년 춘기에 추념제가 거행되고 있다.
키워드 | 경주김씨, 학산, 학자, 후학양성, 학산집, 탄부면 매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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