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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홍순직(洪淳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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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학자 |
시대/생몰년 | 1879(고종 16)∼1950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보은 |
자료출처 | 보은군지 |
근대의 학자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경(致敬), 호는 추당(秋塘)이다. 인산부원군 홍윤성의 후손이며, 고조는 홍병도(洪秉度), 증조는 홍주섭(洪疇燮), 할아버지는 홍재능(洪在能), 아버지는 근재(謹齋) 홍종원(洪鍾元),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로 오응선(吳膺善)의 딸이다. 부인은 남원양씨이며, 회인면 죽암리(竹岩里)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자실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재예(才藝)가 남보다 뛰었다. 또한 효우(孝友)와 시례(詩禮)로 고을에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누가 감독을 하지 않아도 책읽기를 그치지 않고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찍이 학업에 힘써 경사를 통달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 수양하고, 항상 이치에 맞게 남을 대하였다.
1907년(순조 원년) 벼슬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이르렀고, 1934년 회인향교 직원(直員)으로 향교를 중수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으로 나랏일이 날로 그릇되어 가자 두문불출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195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워드 | 남양홍씨, 추당, 학자, 중추원의관, 회인향교 직원, 후학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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