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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장비(張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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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 문신 |
| 시대/생몰년 | 14세기 |
| 형태 | |
| 언어 | |
| 지역 | 영동 |
| 자료출처 | 영동군지 |
14세기 말엽의 인물로 본관은 구례(求禮)이다. 호부시랑(戶部侍郞)인 장유(張維)의 아들이다. 장항(張沆)에게 예학을 배워 학문이 당시 사대부들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뛰어나 크게 촉망되었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승(開城丞)이 되었는데, 이 때는 원(元)나라의 내정 간섭과 조정의 기강이 문란하여 문신과 무신들의 사치스런 정치 풍토가 극심하였다. 그는 정치 풍토를 바로잡고자 예로써 사물을 다루고, 법을 집행함에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권세 앞에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그는 청렴결백한 관리의 소임에 힘을 쏟았다. 그는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낼 때에 국가의 득실을 진언하여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았으며 영풍승(永豐丞)과 한성판윤(漢城判尹) 시기에는 청렴하게 선정을 베풀었고 공민왕 때 신돈이 국정을 어지럽히자 사직하고 영동읍 매천리(梅川里)에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 때 장인 김영이(金令貽 永山君)를 따라 낙향한 사람은 박원용(朴元龍)과 장비(張丕)와 박시용(朴時庸)이며 이 사옹서(四翁婿)는 학문을 강학하는 한편 후진 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 사문의 후손이 선조의 유덕을 사모하여 빙옥정(氷玉亭)이라는 정각을 구축하고 만세돈목(萬世敦睦)이라는 비석을 세워 사문의 정의를 돈독히 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 『永同郡誌』『내고장 전통가꾸기』『人物誌』『永同鄕校誌』
| 키워드 | 장비, 구례 장씨, 장유, 매천리, 만세돈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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