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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권양하(權穰夏)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864(고종 1)∼1928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말기․근대의 학자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구(景矩), 호는 묘은(畝隱)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권계경(權啓經)의 후손이며, 고조는 권치칠(權致七), 증조는 권세묵(權世黙), 할아버지는 권홍규(權弘圭), 아버지는 통정(通政) 권재우(權載友),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신시연(申時然)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김씨로 김윤석(金胤錫)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극진하고, 손에서 책이 놓지 않으며 공부하였다. 또한 행동거지가 찬찬하고 평온하였으며, 근검절약하였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된 후 일본인이 찾아와 호불호(好不好)를 묻자 “나라가 망하여 아프고 애석한데 어찌 호(好)를 묻는가?”라고 하자 일본인이 절하고 갔다고 한다. 이후 수한면 묘서리에 은거 두문불출하고 후진 교육에만 전념하였고, 보은읍 강신리에 있는 난국정(蘭菊亭)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8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워드 안동권씨, 경구, 묘은, 학자, 후진양성, 난국정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