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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이홍렬(李洪烈)
분류 은사
시대/생몰년 1863(철종 14)∼1902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말기의 은사(隱士)로 본관은 예안(禮安), 초명은 정면(廷冕), 자는 성범(聖範), 호는 하산(霞山)이다. 이명홍(李命弘)의 아우 이명징(李命徵)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일(李希一), 아버지는 이철인(李哲仁), 어머니는 영산신씨(靈山辛氏)로 신익근(辛益根)의 딸이다. 부인은 안정나씨(安定羅氏)와 벽진이씨(碧珍李氏)이다. 운창(蕓窓) 박성양(朴性陽)과 계운(溪雲) 김낙현(金洛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비록 적은 음식이라도 부모님이 없으면 입에 대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밤에 의원을 불러와 치료하였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때는 왕명으로 동학군의 동정을 탐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1895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의거를 도모하다가 권신들의 저지를 받았고, 이 해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를 극렬히 반대하였다. 1897년 신창군수(新昌郡守)에 부임하고, 1900년 예산군수 겸 덕산진영병마절제사에 올랐다. 그 후 동생 이정열(李貞烈)이 시정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외속리면 구인리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였다. 1902년(고종 39)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묘는 탄부면 덕동리에 있고 대사성(大司成) 조병즙(趙秉輯)이 지은 묘갈이 있다.

키워드 예안이씨, 성범, 하산, 의금부도사, 단발령 반대, 탄부면 덕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