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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구완희(具完喜)
분류 관료
시대/생몰년 1857(철종 8)∼1915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말기의 관료로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덕초(德肖), 호는 병산(屛山)이다. 참봉(參奉) 구용화(具容和)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동장씨(仁同張氏), 평강채씨(平康蔡氏), 제주고씨(濟州高氏)이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였을 때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동학군토벌에 참여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憮營)의 참모관으로 발탁되었다. 그해 10월 공주 외곽 이인(利仁)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경리청대관(經理廳隊官) 윤영성(尹泳成)의 참모관으로 일본군 1백 명과 함께 동학농민군과 싸웠다. 관군과 일본군은 한때 이인을 점거하였지만 농민군의 수에 비하여 워낙 열세였기 때문에 패퇴하고 말았는데 그 전투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대흥군수(大興郡守)에 임명되었다.

그 뒤 일본어를 배워 러일전쟁이 일어나던 1904년에는 평안북도 의주부윤으로 일본군 북진대(北進隊)의 접응관(接應官)을 맡았고 그 공으로 곧 외부참서관이 되었다. 1904년 2월에는 외부대신서리 이지용(李址鎔)과 함께 내정간섭적인 내용을 담은 한일의정서 조인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 일로 인해 민간 각 단체로부터 이지용과 함께 매국적신(賣國賊臣)으로 성토되었고, 일부 민간인들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3월 2일 그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도 하였다. 이후 육군참령, 육군법원이사관, 경무사를 역임하면서 칙임관이등(勅任官二等)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5적의 죄를 진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며 1906년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이 자객에 의하여 살해되었는데 그 혐의를 받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5년 세상을 떠났으며, 묘소는 마로면 하곡에 있다.

키워드 능성구씨, 병산, 동학군 토벌, 매국적신, 마로면 하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