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 이근춘(李根春) |
---|---|
분류 | 문신 |
시대/생몰년 | 1833(순조 33)∼1894(고종 31)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보은 |
자료출처 | 보은군지 |
조선 후기 의사(義士)로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용규(用圭), 호는 죽하(竹下)이다. 송재(松齋) 이정(李晶)의 9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이학인(李學仁), 아버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증직된 이정목(李廷穆), 어머니는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유영운(柳榮運)의 딸이다. 부인은 분성김씨(盆城金氏)로 김항로(金恒老)의 딸이다.
9세에 이미 육경(六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통하여 막힘이 없었으며, 침식을 잊고 책을 읽어 그 아버지가 병이 될까 염려되어 산수간에 나가 노닐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1866년 아버지가 장차 노중련(魯仲連)의 뜻을 따라 울진(蔚珍)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모셨다.
1883년(고종 20)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사헌부 지평, 성균관 전적을 지내고, 1886년 부친상을 치르고, 1889년 사간원 정언․사헌부 장령을 거쳐 홍문관 부수찬․지제교가 되었다. 이어 통례원 좌통례를 지내고, 1894년(고종 31) 홍문관 교리(校理) 겸 경연시독(經筵侍讀)이 되었다. 그해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시정의 부패를 직언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에 나라가 기울어짐을 한탄하여 음식을 피하고 울진에 있는 부친의 묘소에 도착, 세상을 떠났다. 대사성(大司成) 조병즙(趙秉輯)이 지은 묘갈이 있다.
키워드 | 예안이씨, 용규, 죽하, 의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