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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김민태(金玟泰)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823(순조 23)∼1887(고종 24)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학자․효자로 본관은 경주, 자는 문옥(文玉), 호는 회와(悔窩)이다. 홍문관 전한(典翰) 김천우(金天宇)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김상형(金尙亨), 아버지는 김기대(金基大)이다.

보은읍 종곡리에서 태어났으며, 타고난 성품이 정직하고 예의범절에 엄격하였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면서 학문을 좋아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을 때는 밤낮으로 시탕(侍湯)하고, 위독해지자 하늘에 기도하니 완쾌하여 1년 남짓 더 살았다고 한다. 상을 당해서는 3년을 하루같이 상복을 벗지 아니하고 시묘하였으며 제삿날에는 가나나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제수를 마련하여 예법대로 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학문에 성취가 있어 주자(朱子)의 『심경』, 『근사록』 등에서 경구를 추려 엮은 『심경초(心經抄)』를 저술하였고, 1862년(철종 13) 국정의 기반이 되는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제도적 모순을 지적하여 바로잡을 것을 건의한 「삼정책(三政策)」은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며 동시에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다. 1904년(광무 8)에 효행으로 명정(命旌)되어 출생지인 보은읍 종곡리에 정려문이 세워졌다. 저서로 '회와집(悔窩集)' 4권 1책이 있다.

키워드 경주김씨, 문옥 회와, 보은읍 종곡리, 심경초, 삼정책, 회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