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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벽초 홍명희 문학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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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학 |
시대/생몰년 | 36085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괴산 |
자료출처 | 경향신문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2011.10.25.), 위키백과 |
<벽초 홍명희 문학비>는 1998년 10월 17일 홍명희 선생 30주기, 『임꺽정』 연재 70주기를 기념한 제3회 홍명희문학제 때 벽초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당시에는 도지사와 군수도 참석하고, 제월리 마을 사람들이 국밥 500인분을 끓이고 그릇을 내오는 등 지역민의 성원 속에서 문학비 건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를 세운 다음 다음해 현충일에 보훈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망치를 들고 와서 문학비에 표기한 해설문을 문제 삼았다. 보훈단체 회원들이 제기한 문제는 총 세 가지였다. 첫째, ‘평생 민족을 위해’라는 구절에서 ‘평생’을 뺄 것. 둘째, 문인들한테는 선생이지만 우리한테는 선생이 아니기 때문에 ‘선생’이란 말을 뺄 것. 셋째, ‘전범(戰犯)’이란 말을 넣을 것. 결국 2000년 6월 12일, ‘평생’과 ‘선생’이란 말을 빼고 1948년 월북했다는 문구를 넣은 동판을 다시 만들어 부착했다. 문학비는 문인들이 1만 원, 5만 원씩 후원금을 내서 세운 것인데, 보훈단체에서는 도나 군에서 자기들은 박대하면서 문학비 건립에만 재정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문학비의 글씨는 진보학계를 대표하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썼다. 문학비를 건립할 때는 글씨만 써서 보냈는데, 2011년 10월 3일에 제월리로 와서 빗물에 씻겨 먹빛이 바랜 글자에 붓으로 직접 먹을 넣었다.
키워드 | 문학비, 홍명희, 괴산, 제월대, 벽초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 재향군인회, 월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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