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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조명희 생가터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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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학 |
시대/생몰년 | 34556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진천 |
자료출처 | 진천자치신문 <진천읍 벽암리 수암마을>(2015.03.02.) |
진천군 벽암리 수암마을은 2013년까지만 해도 마을 이름의 유래를 담고 있는 수암(秀岩·빼어난 모습의 큰 바위)이 마을 입구에 있었다. 마을에서 제사도 지내던 상징이었는데 안타깝게 사유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깨어 없어진 그 수암 바로 건너편이 진천이 낳은 문학가 포석 조명희 선생과 시인 조벽암 선생이 출생한 생가터다. 조벽암 선생은 조명희 선생의 조카이기도 하다. 현재 생가는 남아 있지 않고 대신 1994년 8월 10일에 포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동양일보사와 충북문인협회가 '생가터 표지석'을 세웠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조명희 선생의 장남 조선인 씨와 장녀 조선아 씨가 자리에 함께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조명희 선생은 아들과 딸을 부를 때면 늘 성과 이름을 함께 큰 소리로 부르며 조국을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표지석의 ‘원래 위치는 왼편 50미터 길 건너 상가지역’이라고 표지석 하단부에 쓰여있어 표지석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표지석을 뒤로 하고 큰길 쪽으로 조금 나가면 포석문학공원이 있다.
키워드 | 조명희, 포석, 진천, 수암, 생가터, 표지석, 조벽암, 문학관, 포석문학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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