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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정호승
분류 문학
시대/생몰년 1915년~미정
형태
언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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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동양일보 <풍향계/정호승 시인을 새겨 읽다>(2024.04.01. 이석우)

정호승 시인은 1915년 12월 1일 충주시 교현동 420번지에서 출생하여 1923년 4월에 충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보통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서울의 중앙고보에 진학하였으나 좌경 서적 등을 탐독한 이유로 무기정학에 이어 퇴학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1935년 다시 서울로 올라온 정호승 시인은 종로 4가에서 <경충무역사>란 운수사업체를 열고, 그 건물 2층에서 운영비를 전담하며 『조선문학』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효석·이무영·주요섭·김소운·조용만·이헌구·홍효민 등 쟁쟁한 문인들이 창간호를 장식하였다. 순수문학이나 경향문학을 막론하고 역량 있는 문인들의 글이 촘촘하게 지면을 장식하였으니 30년대 한국문단을 책임지고 있던 셈이다. 일제강점기 문학인의 통로 역할을 하던 『조선문학』은 1939년 폐간되고 말았다. 이 위기의 순간에도 정호승 시인이 조선문학사에서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인 『모밀꽃』을 발행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정호승 시인은 1945년 해방을 맞았을 때, 남로당에 입당하고 좌익운동을 하였다. 미군정은 해방 초기에는 남로당 가입 문제에 대하여 전혀 제재하지 않았었다. 이 무렵 좌경 경향의 동인지 『아우성(我友聲)』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1946년 청주교도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일로 귀결되었다. 1948년에는 김구의 남북협상 차, 북한을 다녀와, 또다시 2차 옥고 치른다. 그에게는 내재 되어 있는 강한 신념들은 옥고를 서슴없이 받아들이게 하였다. 정호승 시인은 정치적 지적 기초 위에 소박한 공산 사회의 이념을 간직하고 있었다. 단지 그뿐, 그의 시에 이념의 생경한 계급투쟁 언어는 들어 있지 않다. 그는 아무리 금가루라고 해도 눈에 넣으면 독이 됨을 알기에, 함부로 그의 시속에 생경한 투쟁어 따위는 끌어오지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 이념성만을 강조한 프로 농민시나 민족 계몽주의 농민시를 넘어선 곳에 정호승의 시의 품격을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옛말을 끌어오고 고래의 운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향토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6.25 전란 후 정호승 시인의 부인인 정정순 여사는 충남에서 중학교 가정과 교사를 하고 있었다. 여사는 관계기관의 감시를 받으면서 툭하면 전보 발령 통지를 받는 고초를 겪으며 자녀를 키워 왔다고 한다. 그녀는 피난살이 하듯 떠돌던 교직 생활 속에서 남편의 시집 한 권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였다. 얼마나 남편의 사상과 문학이 자신의 삶을 옥죄었으면, 시집 한 권 챙겨둘 엄두를 내지 못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경우, 1949년 11월 4일 문학가동맹 탈퇴 후, 녹번보도연맹에 자진 가입하였다. 그리고 1950년 2월에는 국민보도연맹 문화실장으로 취임하여 반공 강연 등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우익단체인 한국문학가협회 결성 준비 모임에 이름까지 올린 상황이었다. 반면, 정호승 시인은 대전에 살고있는 누님댁에서 당시 충남 도지사였던 자형의 강권에 의해 보도연맹 가입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건이 사회주의 신념에 대한 포기를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정호승은 벽장 속에 보관하고 있던 보도연맹 가입서를 꺼내 들고 대전을 떠나왔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중 충주지역 예술동맹위원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상이 뒤집혀 일부 문인들은 월북을 감행하였고 남아 있는 문인들은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술동맹위원장 간판을 내려놓지 않고 태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고 좌익활동의 뚜렷한 행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당시 조카에게 자랑 삶아 읽어주곤 했다는 프롤레타리아 연극 극본이 좌익 성향의 잡지 『아우성』에 게재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확인할 길은 없다. 정호승 시인은 게으른 생활의 일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천품이 한없이 선한 양갓집 자제의 표본이었다. 정정순 여사는 “빗자루 하나 들지 않았으며, 이발하러 가면 이발소가 휴일이고 목욕하러 가면 목욕탕이 휴일이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가 세상의 물정과 돌아가는 상황에 무관심한 낙천주의자 임을 시사하는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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