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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홍석륜(洪錫倫)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97(정조 21)∼1871(고종 8)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오(景五)이다.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 영의정 홍윤성(洪允成)의 후손이다. 회인 죽암리에 거주하였으며, 서청(西靑) 박성혼(朴性渾)과 옥산(玉山) 박명신(朴命薪) 부자 문하에서 배웠다. 이때 집에서 선생의 집까지 거리가 5리나 떨어져 있었으나 풍우한서(風雨寒暑)를 가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왕래하며 학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회인 죽계구로(竹溪九老)의 1인이다.

키가 크고 용모가 온화하고 순수하여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그 너그럽고 후덕함을 알았으며, 일을 처리할 때는 항상 성실히 수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스승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승 박성혼의 제사가 돌아오면 손수 냇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 제수로 사용하도록 하여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일찍부터 글을 지으면 상자에 넣어 시렁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가 죽을 것이니 이 글을 자손에게 남길 수 없다.”라고 하며 다 태웠다고 한다. 1871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워드 남양홍씨, 경오, 박명신, 회인 죽계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