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신동문 시비(단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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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학 |
시대/생몰년 | 35916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단양 |
자료출처 | 충청리뷰 <신단양입구의 신동문시비>(2005.07.05.), <<충북의 문학과 문학인>>(청주문화원, 청주문화총서15), 블로그 <쏠쏠한 일상> |
단양읍 상진리 1017 소금정공원에 있는 신동문 시인의 첫 번째 시비. 평생을 초야에 묻혀 살던 신동문 시인이 1993년 9월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66세로 세상을 떠나자 동양일보사와 단양문화원이 현지 문인들의 뜻을 모아 시비를 세우고 1995년 6월 2일 제막식을 가졌다. 시비에는 신동문 시인이 평생을 추구해 오던 삶과 일치하는 작품 「내 노동으로」 마지막 7~9연이 해동 김동연 서예가의 솜씨로 새겨져 있다. 자연 속에서 살다가 떠난 신동문 시인의 시비는 조형석이 아니라 자연석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단양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돌을 찾아 나섰는데, 때마침 남한강 공사장에서 빗돌로 쓰기에 알맞은 돌을 찾아냈다. 그러나 돌은 가로가 4.2m, 무게가 22.5t이나 되는 화강석이었다. 일반 크레인으로 운반은 어림도 없어 단양의 모 시멘트 회사에 부탁해서 크레인을 지원받고 대형 트럭을 움직여 운반할 수 있었다. 시비 앞쪽에는 “이곳은 20세기 우리 현대사의 격동기에 민중을 위한 저항정신으로 일관하며 「풍선기」,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아아 내 조국」 등 나라사랑의 열정을 주옥같은 서정시로 꽃피운 신동문(辛東門) 시인(1927~1993)의 문학동산이다. 생애의 후반기를 민초들과 더불어 정을 나누셨던 단양 땅의 유서깊은 이곳에 선생의 높은 뜻과 빛나는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한국문인협회가 SBS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현대문학 표징사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새긴다.”라고 쓰인 ‘신동문(辛東門) 선생의 문학동산’ 안내판이 있다. 1998년 5월 1일에 세워졌다. 신동문 시인은 48세에 충북 단양의 오지로 내려가 농민이자 침술가로 생의 후반기를 살았다.
키워드 | 신동문, 시비, 단양, 소금정공원, 동양일보, 단양문화원, 노동, 다비데군, 풍선기,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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