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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신경림
분류 문학
시대/생몰년 1936~2024년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자료출처 네이버 위키백과 ? 신경림, 네이버 나무위키 - 신경림

충청북도 충주군(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상입장에서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신태하와 어머니 연인숙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은초등학교와 충주사범학교병설중학교, 충주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 잡지에 「갈대」, 「낮달」, 「석상」을 비롯한 시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한때 건강이 나빠서 고향에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다시 서울로 와 잡지사·출판사 등에 취직해 지내며 10년 동안 절필했다. 1965년 겨울에 절친인 김관식 시인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는데,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 이때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등을 발표했다. 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 「전야」, 「서울로 가는 길」 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재출발 이후 그의 시들은 '시골의 흙냄새에 묻어서 풍기는 생활의 땀 냄새와 한(恨)과 의지 등'이 짙게 풍겨 이른바 민중 시인의 이름을 얻게 했다.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통해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농민문학·민중문학 등을 주제로 평론들도 발표하였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으로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했는데, 이는 1990년 10월 4일 외국어대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으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프락치로 수사에 협조해 오다가 탈영한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밝혀졌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부문), 4·19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동국대학교 국문과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7년 전 발병했던 대장암의 재발로 투병하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2024년 5월 22일 오전 8시 17분 항년 89세로 작고했다.
키워드 신경림, 시인, 충주, 노은면, 농무, 갈대, 김대중, 민학투련, 윤석양, 김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