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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광혜원면 회죽리 회안마을 산제
분류
시대/생몰년 조선~현재
형태 원 산제당[콘크리트 당사터,평토단,물푸레나무,샘],현재 산제장[평토단, 상석,비석]
언어
지역 진천
자료출처

회죽리 회안 마을은 매년 음력 정월 초이레날 자시에 무이산신제를 지낸다. 해에 따라 정월 초엿새날 밤 12시에 지낸 때도 있다.
현재의 산제장은 자연형 제장으로, 상석과 ‘무이산령(武夷山靈)’이라고 각자한 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 산제당은 무이산 중턱에 위치했으나, 사유지인 까닭으로 2010년 경 위치를 변경하였다. 
원 산제당은 콘크리트 당사와 물푸레나무, 당사 아래 작은 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콘크리트 당사는 1970년 정부시책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후에는 당사터에 평토단을 만들어 산제사를 계승하였다. 
2010년 경 산제장 위치를 옮길 때, 날을 받아 고유제를 지냈다. 고유제에는 당시 이장과 대동계장 등이 헌작 재배로 진행하였다. 제수는 술, 삼색실과, 통북어 등을 올렸다.
제관은 노인회장과 대동계장이 주축을 이루며, 해에 따라 마을의 연장자가 선출되어 참여하기도 한다. 제관은 생기복덕을 가려 제삿날 2~3일 전에 제관 1명, 축관 2명, 소염인 집사 1명, 총 4명을 선출한다. 원래 제주는 3일 정성을 들였으나, 최근에는 당일 정성으로 바뀌었다. 선출된 제관은 금연, 금주, 금색, 금육 등 금기를 지키고 부정을 막았다. 선출된 제관에게 1990년대부터 격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3일 정성을 들이던 당시, 음력 초나흘날부터 마을 주민들도 근신하며 제사를 준비했다. 제관 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초닷새날에 마을 장정 3명이 10발 이상되는 왼새끼 금줄을 마련한다. 금줄은 동네 어귀 3곳과 제당에 쳤다. 제 당일에는 새벽 5시에 마을 어귀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 출입을 막고, 제관 집에서 흑돼지를 잡는다. 이후 제장에서 제수를 마련한다. 
제수는 소머리, 직접 지은 메, 북어포, 삼색실과 등을 올린다. 원래 메밀묵도 올렸으나, 현재는 마련하지 않는다. 통돼지는 1990년대부터 대동계 협의에 따라 황소머리로 변경되었다. 메는 제장에서 직접 지어 솥째 올린다.
제사 차례는 제주가 ‘단잔 차례’로 올린다. 향을 피우지 않고 강신 차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제관의 헌주 재배-축관의 독축-3명의 제주들의 헌주 재배-소지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는 대동계 소지, 제주소지[제관-축관-소염 순], 개인소지[출생 순] 순으로 올린다.
산제사가 끝난 뒤, 참사자들이 제장에서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소머리로 국을 끓여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복한다.
제수 진설을 할 때, 마을에서는 마중시루를 올린다. 
예전에는 마중신루 신호로 큰소리를 세 번 외쳤으나, 현재는 핸드폰으로 알린다.
마중시루는 그해 선출된 제관 집을 시작으로, 참여하고 싶은 가정에서 올린다. 시루떡과 청수를 올린다. 마중시루 떡은 두 되의 쌀을 세 번에 떠서 한 시루를 쪄서 올린다.
회안마을의 축문은 사문 최간 선생이 틀을 잡고, 오병환 선생이 다듬어 사용하였다. 현재 오좌근 노인회장이 한글로 해석하여 마을에 보관하고 있다. 또한 회안마을에서는 제사 차례의 순서를 한글로 써서 기록해두고 그대로 진행한다. 이 문서의 제목은 ‘산제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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