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백곡면 양백리 상백마을 산제 |
---|---|
분류 | |
시대/생몰년 | 조선~? |
형태 | 당사 |
언어 | |
지역 | 진천 |
자료출처 |
양백리 상백마을은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와 초닷새 사이에 길일을 택해 산제를 올렸다. 대체로 정월 초사흗날로 정해지는 해가 많았다. 3월까지 택일이 안되면 그 해는 제사를 올리지 않았다.
상백마을 산제당은 음달말 북쪽 안산 중턱에 위치한다. 제장은 당사 터에 초석을 쌓은 형태이다. 원래 정당인 산제당과 하당의 당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평 크기의 초가집 당사였는데, 1960년대 기와로 지붕을 개량하였다. 1970년대 산 소재 구조물철거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당사터에 초석 등을 쌓아두고 정당과 하당 사이 돌계단을 놓아두었다. 정당과 하당 사이에 산제에 사용하던 시루 2개를 놓아두었다.
제관은 음력 설을 쇤 정월초하루에 생기복덕을 가려 당주 부부, 제관 1명, 축관 1명을 선출하였다. 제관 선정은 주로 전인린 씨가 담당하였다. 선출된 제관들에게는 소정의 수고비를 주었다. 당주는 쌀 두말, 제관과 축관은 고무신 한 켤레였다.
제일과 제관이 선정되면[정월 초사흗날이 제일인 경우] 섣달에 꼰 왼새끼 금줄을 동네 어귀와 선정된 제관 집에 친다. 금줄은 산제 다음날 걷어낸다. 또한 제관 집과 제수를 장만하던 동네 우물에 황토를 뿌린다.
선정된 제관들은 제사 당일 아침에 목욕재계를 한다.
제 당일 제수를 구입하여 당주 집에 가져다 주면, 당주가 제수를 마련한다. 당주는 백설기 두 시루를 찌고, 밥과 조라술을 빚는다.
저녁이 되면 마련한 제수를 가지고 제관과 이장단이 제당에 올라간다. 예전에는 하당에서 기다리다가 제사 시간에 맞춰 정당인 산제당으로 올라갔으나, 당사가 훼철된 후로는 기다리는 절차는 생략되었다.
제수는 시루귀마다 북어 2개를 꽂은 백설기 두 시루, 메, 포, 삼색실과, 채나물, 조라술, 초, 향 등을 올렸다.
제사 차례는 제수 진설-분향-당주, 제관, 축관이 함께 재배-제관의 헌작재배-축관의 고축-소지-철상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의 경우, 대동소지와 참사자소지만 올렸다. 철상 후 제장에 제수를 일부 봉송한 뒤 참사자들이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제장에서 소지를 올릴 때 마을을 향해 마중시루 올리라는 신호를 하면, 각 가정에서는 이때 개인소지와 마중시루 고사를 올린다. 마중시루 고사는 집 마당에서 떡시루와 정한수, 초를 올리고 재배 후 소지를 올리는 간단 차례로 진행하였다.
키워드 | 양백리 상백마을 산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