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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길이상(吉履祥)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94(정조 18)∼1876(고종 13)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선(士善), 호는 금호(錦湖)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길보(吉堡), 아버지는 역천 송명흠의 문인인 모정(茅亭) 길치성(吉致晟),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만중(成萬中)의 딸이다. 본래 금산(錦山)에 살았으나 자라서 회덕(懷德)에 이사하여 추양(秋陽) 송계간(宋啓幹)에게 배웠다. 나이 들어 회인 산수를 사랑하여 가족을 이끌고 회인현 서면 거교리로 옮겨와 살았다. 회인 죽계구로(竹溪九老)의 1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자 부친이 몸이 약한 것을 염려하여 금지시켰으나 10세에 이미 칠서(七書)에 통달하였다 한다. 용모가 단정하고 풍채가 준수하여 어깨와 등이 수평을 유지하여 걸어 다닐 때 마치 학과 같았다 한다. 인의(仁義)를 중시하고 충신효제(忠信孝悌)를 몸소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다. 그 당시 도정(都正) 김택의(金宅義)와 진사 임화진(林和鎭)이 고을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한가하면 냇물에서 황관(黃冠) 야복(野服)으로 고기를 잡았다 한다. 그는 성리 경전 이외에도 천문 산복(算卜)에도 능하였으나 사설(邪設)이라하여 배척하고 예서(禮書), 경설(經說)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현인(賢人)들의 어록을 손수 쓴 것이 백여 권이나 되었다 한다. 학행으로 여러 차례 추천되었으며, 1875년(고종 12) 나이가 80세가 넘자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되었다. 저서로 '금호집(錦湖集)'이 있다.

키워드 해평길씨, 사선, 금호, 회인 죽계구로, 금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