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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송석정(松石亭)
분류 충북의 누정
시대/생몰년
형태
언어
지역 제천
자료출처 충북의 누정

석정은 조선 명종때, 이 고장 출신인 임음룡 제주목사가 그 직을 수행하고 귀향 할 때 해송(海松)10주를 가지고 와 그 중 8주를 지금의 봉양읍 팔송 마을로 이름 지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었으나, 세월이 흘러 8송은 그 흔적을 살필 수 없고, 이곳 송석정 또한 병풍을 친듯한 기암 반석위에 한 그루의 해송과 앞 하천에는 짙푸른 물이 흘러 깊은 소(沼)가 있었음이 암벽에 음각되어 있는 ‘송석정’ 과 ‘창하조대(蒼霞釣臺)’ 라는 글로 미루어 옛 모습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봉황산(鳳凰山)기슭 아래 제천천(堤川川)과 팔송천(八松川)이 합수되는 소(沼)위 에 해질 무렵 고기잡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청하조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석벽 위에 솔숲으로 둘러싸인 송석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산수경관이 수려한 이곳에서 주변 학자들이 모여 청담(淸談)을 나누고 선비들이 국사를 논의하였다. 이를 기려 그의 후손과 뜻있는 인사들이 전설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송석정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1999년 이원종(李元鍾)충북지사의 특별한 지원과 권희필(權熙 弼)시장의 배려로 임씨 후손들의 소원이며 선조들의 맥을 잇는 송석정을 복원하게 되어 그 유래를 알리게 되었다. 당시 송석정 복원 추진위원은 봉양읍장 신긍남(辛兢南). 팔송리장 김동기(金東起). 미당 리장 이재원(李載源). 충북문화관광 과장 권기수(權奇秀). 학산개발위원 최만섭(崔萬燮). 미 당개발위원 이봉주(李鳳周). 팔송리 이수택(李守澤). 송석가든 대표 김용옥(金龍玉). 임응룡 (任應龍)의 11대손 임민규(任敏奎). 제천시의원 박태덕(朴泰德)등이다. 송석정기(松石亭記) 백두대간 뻗어내려 금수강산 조성되니 처처(處處)에 영산영봉(靈山靈峰)고을마다 대천 (大川)이라. 태백준맥(太白峻脈)연봉(延峰)하에 봉황산(鳳凰山)이 예로구나. 봉황산 날든 봉 (鳳)이 오산(梧山)에 날아가서 비수리(飛樹里)감돌다가 무봉암(舞鳳巖)에 춤을 추니 송석정 졸든 학(鶴)이 경비팔송(競飛八松)하더라. 옛 임(任)이 놀던 정자 비바람에 도괴(倒壞)되고 창하조대(蒼霞釣臺)어옹(漁翁)들은 전설속에 살아있어 함정소(陷井沼)깊었든 곳은 흔적 (痕迹)만이 남았네. 충북지사 이원종님(李元鍾任)제천시장 권희필(權熙弼任)주민염원 청허(聽許)하여 정자 를 복원하니 그 공적과 송석정이 여천무궁(與天無窮)하소서, 꽃피고 잎이 피고 단풍들고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계절에 등정(登亭)하는 한량(閑良)들아 자연보호 잘 지켜서 천추만대 전 하자. 庚辰(2000)年重陽月八松里松巖朴基福撰書
키워드 충북의 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