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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백운정(白雲亭)
분류 충북의 누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시대/생몰년 1440〜1470년(추정)
형태
언어
지역 옥천
자료출처 충북의 누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①【원문】 김수온 식우집 권2 (金守溫 拭疣集 卷二) 제목 : 청산백운정기(靑山白雲亭記) 吾鄕去靑山 僅十餘里 而余之往來也 必由其宇下 故夫人之來縣監務者 吾未有不面焉以交 今年夏 崔君觀政于靑 適及二稔 拆書于乖崖子曰 今改東軒上小亭 公所曾上處也 盍名亭而記其義 使兩縣子弟誦之乎 余復之曰 名公之亭 必用字牧之意 夫字民牧民 乃君夙夜心于是而期於實效 將以應監司 將以承聖化 則君於字牧 心飫之矣 欲以甘澹泊守淸素 以礪恥爲義 則一介取與 尙不敢苟焉 而氷蘖之操 君所裕爲也 亭臨曠野 近帶大川 攀明月抱淸風 以騁眺望者 固斯亭之淸景也 取以名亭似矣 而然亦非亭之大者也 夫縣號靑山 若名縣亭 不以白雲而取他義 非博物君子也 何則 靑山未有無白雲 白雲未有無靑山 古人之詩曰 [靑山靑靑白雲外。白雲白白靑山中] 此之謂也 縣在高山巨水之間 重峯疊嶂 鬱鬱蒼蒼 君若晨上斯亭之上 衡盱而望 白雲油蒸而生 空蒙然靉䨴然 須臾如白衣 須臾如蒼狗 其出也無心 其行也無迹 靑山愈靑 白雲益白 情境陶陶 有不可名言者矣 世有愛靑山白雲者 傳神於屛障者 君以宰靑山而上白雲亭 君豈非活畫中一箇儒仙也耶 余以老病 五六度上箋乞骨 倘蒙上恩 許歸桑梓 得與君一酌於斯亭之上 蒼顔黃髮 尤有宜於靑山白雲也 詩曰 闢址坤靈望北宸 松椽茅蓋不知民 山圍古縣靑當戶 雲對高亭白悅人 苦竹未堪留彩鳳 芳蒪聊可慰王賓 蒼顏況復兼華髮 早晚歸來乞退身 【번역문】 우리 고향이 청산에서 떨어지기 겨우 십여리에서 내가 왕래할 적에는 반드시 그 정자 아래를 지나게 된다. 그렇기 떄문에 여기 감무로 있는 이를 내가 알고 사귀지 않는 사람이 없다. 금년 여름에 최군이 청산에 와서 정사를 한지 마침 2년이 되었는데 괴애자에 글을 보내기를 "이제 동헌 위에 있는 조그만 정자를 고쳤는데 이곳은 공이 일찍이 올라 놀던 곳이니 어찌 정자의 이름을 부치고 그 뜻을 써서 두 고을 자제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지 ㅇ낳으려는가?" 했다. 나는 화답하기를 "그대의 정자에 이름을 짓자면 반드시 원이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는 뜻을 써야하겠는데,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는 것은 그대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워 여기에 마음을 두어서 실효를 얻어 장차 감사하게 응하고, 장차 성화를 받들어 펼 것인즉 그대가 백성을 사량하고 다스리는 데는 필연 이미 충족했을 것이, 담박한 것을 달게 여기고 청소한 것을 지켜서 염치를 가다듬는 것으로 하자니, 한 개의 물건을 취하고 주는 것도 오히려 구차스럽게 히지 않아서 빙벽같은 지조는 그대가 넉넉히 하는 바가 아닌가. 정자가 넓은 들에 임하고 가까이는 큰 내를 띄었으며 밝은 달을 더위잡고 맑은 바람을 안아서 조망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진실로 이 정자의 경치니,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짓는 것이 좋을 듯하나 이것도 정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체 고을 이름을 짓는데 백운이라 하지 않고 딴 뜻을 취한다면 이는 박물군자가 아니로다. 왜 그러한가 하면 「청산에는 백운이 없는 데가 없고 백운이 있는 데에는 청산이 없는 데가 없다. 옛 사람의 시에 '청산은 백운 밖에 푸르고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 한 것이 이를 두고 말함이다」 이 고을은 높은 산과 큰 물 사이에 있어 겹겹한 봉우리와 첩첩한 묏부리가 울울하고 창창하니. 그대가 만일 새벽에 이 누 위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보면 하얀 옷과 같고 금시에 또푸른 개와 같이 할 것이다. 그 나오는 것이 무심하고 그 다니는 것이 자취가 없이 푸른 산은 더욱 푸르고 흰 구름은 더욱 희어 정경이 도도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청산과 백운을 사랑하여 병풍에 그것을 그리는 자가 있다. 그대는 청산의 원으로서 백운정에 올랐으니, 어찌 산 그림 속의 한 유선이 아니겠는가? 나는 늙고 병들어 대 여섯 번 글을 올려 물러가기를 청하였으니, 혹 상은을 입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신다면 그대와 함께 이 정자 위에서 술 한잔 마셨으면 창안백발이 더울 청산에, 백운이 마땅할 것이로다. ②【원문】 신광한 기제집 권6 (申光漢 企齊集 券六) 題靑山縣白雲亭 天作名區檀勝形 주棖白雲今望斷 故國回首酋萬山靑 ③【원문】 임방 수촌집 권5 (任坠 水村集 卷五) 제목-過東추白雲亭 朱蘭隱暎大江潰 縹□危亭號白雲 文章富貴俱陳迹 秋樹肅肅夕照曛 [신증] 객관(客館) 북쪽에 있다. ○ 김수온(金守溫)의 기(記)에, “우리 고향이 청산(靑山)과의 거리가 겨우 10여리이기 때문에 왕래할 적에는 반드시 그 정자 아래를 지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감무(監務)로 있는 이를 내가 알고 사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금년 여름에 최군(崔君)이 청산(靑山)에 와서 정무를 살핀지 마침 2년이 되었는데 괴애자(乖崖子 김수온의 호)에게 글을 보내기를, ‘이제 동헌(東軒) 위에 있는 조그만 정자를 고쳤는데, 이곳은 공(公)이 일찍이 올라 놀던 곳이니, 어찌 정자의 이름을 부치고 그 뜻을 써서 두 고을 자제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지 않습니까.’ 했다. 나는 회답하기를, ‘그대의 정자에 이름을 짓자면 반드시 원이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는 뜻을 써야겠는데,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는 것은 그대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을 자며 여기에 마음을 두어서 실효를 기약하여 장차 감사(監司)에게 호응하고, 장차 성상의 교화를 받들었으니 그대가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는 데는 필연 이미 충분하도다. 또 정자의 이름을 담박(淡泊)한 것을 달게 여기고 맑은 것을 지켜서 염치를 가다듬는 것으로써 하자니, 보잘것없는 물건을 취하고 주는 것도 오히려 구차스럽게 하지 않으니, 빙벽(氷蘗) 같은 지조는 그대가 넉넉히 하는 바가 아닌가. 정자가 넓은 들에 임하고 가까이는 큰 시내를 띠고 있으며 밝은 달을 붙잡고 맑은 바람을 안아서 조망(眺望)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진실로 이 정자의 경치이니,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짓는 것이 좋을 듯하나 이것도 또한 정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체 고을 이름이 청산(靑山)이니 만일 이름을 짓는데 백운(白雲)이라 하지 않고 딴 뜻을 취한다면 이는 박물군자(博物君子)가 아니로다. 왜 그러냐 하면 청산(靑山)에는 백운(白雲)이 없는 경우가 없고 백운 있는 데에는 청산이 없는 경우가 없다. 옛 사람의 시(詩)에, ‘청산은 백운 밖에 푸르고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 한 것이 이를 두고 말함이다. 이 고을은 높은 산과 큰 물 사이에 있어 겹겹한 봉우리와 첩첩한 산등성이 매우 울창하니, 그대가 만일 새벽에 이 누(樓) 위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면 흰 구름이 유연(油然)하게 생겨 마치 부슬부슬하고 자욱해서 얼마 뒤 하얀 옷과 같고 또 푸른 개와 같이 할 것이다. 그 나오는 것이 무심(無心)하고 그 다니는 것이 자취가 없이 푸른 산은 더욱 푸르고 흰 구름은 더욱 희어 정경(情境)이 흐뭇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청산과 백운을 사랑하여 병풍에 그것을 그리는 자가 있다. 그대는 청산의 원으로서 백운정(白雲亭)에 올랐으니. 그대는 어찌 산 그림 속의 한 유선(儒仙)이 아니겠는가. 나는 늙고 병들어 대여섯 번 글을 올려 물러가기를 청하였으니, 혹 주상의 은택을 입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시어 그대와 함께 이 정자 위에서 술 한잔 마셨으면 창안백발(蒼顔白髮)로 더욱 청산(靑山)과 백운(白雲)에 마땅할 것이로다.” 하였다. [여지도서] 白雲亭(在客館北○前有小池種蓮乖崖金守溫記曰吾鄕去靑山僅十餘里而余之往來也必由其宇下故夫人之來監縣務者吾未有不面焉以交今年夏崔君觀政于靑適及二稔折書于乖崖子曰今改東軒上小亭公所曾上處也盍名亭而記其義使兩縣子弟誦之乎余復之曰名君之亭必用字牧之意夫字民牧民乃君夙夜心于是而期於實效將以應監司將以承 聖化則君於字牧必飫之矣欲以甘澹泊守淸素以礪廉治則一介取與尙不敢苟焉而氷蘖之操君所裕爲也亭臨廣野近帶大川明月而抱淸風以騁眺望者固斯亭之景也取以名亭似矣而然亦非亭之大者也夫縣號靑山若名亭不以白雲而取他義非博物君子也何則靑山未有無白雲白雲未有無靑山古人之詩曰靑山靑靑白雲外白雲白白靑山中此之謂也縣在高山巨水之間重峯疊嶂欎欎蒼蒼君若晨上斯亭之上衡盱而望白雲油然而生空濛然靉䨴然須臾如白衣須臾如蒼狗其出也無心其行也無跡靑山愈靑白雲益白情境陶陶有不可名言者矣世有愛靑山白雲者傳神於屛障者矣君以宰靑山而上白雲亭君豈非活畫中一箇儒仙也耶余以老病五六度上箋乞骸倘蒙 上恩許歸桑榟得與君一酌於斯亭之上蒼顔黃髮尤有宜於靑山白雲也)
키워드 충북의 누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