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관란정(觀瀾亭)과 원호 유허비(元昊 遺墟碑)
분류 충북의 누정
시대/생몰년 1845년
형태
언어
지역 제천
자료출처 충북의 누정

관란정(觀瀾亭) 제천 시내에서 아시아 시멘트 입석 공장을 지나 동북 방향으로 약 2km 남짓 떨어진 곳 에 푸른 잔솔이 우거진 송학면 장곡리의 뒷산 언덕에 누각 하나가 외롭게 서 있으니, 이 고색 찬연한 정자가 관란정(觀瀾亭)이다. 이 언덕 끝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영월 서강(西江)이 여울 되어 흰 비단폭 처럼 굼실굼 실 굽이쳐 흐르고 정자 바로 아래는 60여m의 높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그 옛날 원호가 단종을 추모하며 눈물을 뿌리던, 천고의 슬픈 이야기를 안은 채 유유히 흐르고 외로운 정 자는 고신(孤臣)의 충의를 풍기며 말없이 서 있지만, 처절했던 지난날의 사연을 떠 올리면 찾는 이의 마음이 허허롭기만 한 곳이다. 이 관란정은 원호(元吴)가 죽은 뒤 후손들과 유림들이 그의 충절을 길이 앙모하기 위 하여 헌종 11년(1845)그 자리에 정자를 세우고 원호의 호를 따라 관란정(觀瀾亭)이라 하고 유허비를 세웠으며 1941년에 개축하였다. 건물 구조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기단은 자연암반 위에 토단으로 하였고 주초는 정평주초로 하였다. 가구형식은 오량가이고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하였다. 공포형식은 주간에서는 이익 공식으로 귀포에서는 삼익 공식으로 하였다. 축대가 헐고 마루판이 파괴되어 1971년 당국에서 보수하여(군비 50만원 투입)오늘에 이르러 지방사적(충청북도 기념물 제92호)으로 지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원호의 충의에 찬 애절한 사연은 글로지어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하였는데, 주위의 산과실 (山果實)과 산나물을 정성을 들여 채취하여 표주박에 글월과 함께 넣어 서강에 띄우면 빈 표주박은 거슬러 올라와 원호가 받았다고 하니 그 지극한 충절은 아무도 따를 길이 없다. 낡은 비각안 목판에 붓으로 쓴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구가 있다.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나가다, 이제와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 이 거슬러 흐르고져, 나도 울어 보내도다.」 그는 왕께 향한 충절을 어찌할 길 없어 서강 기슭으로 거닐며, 님 그리는 단성을 강물 에 흘러 보내며 울었다고 한다. 그 후손들은 이 충절이 자랑스러워 관란정 중수 약기(重修 略記)에 「...我先祖觀瀾先生生郎 端廟時生六臣之中惟先牛.處畏約文時而克盡臣道貞忠特節只爲慧星 而光宇宙......」 (내 선조 관란선생은 단종조의 생육신 중의 한분이신데 오직 선생만, 두려울 때 있었으 면서도 신하의 도리를 다한 특별한 충절은 넉넉히 혜성으로 우주를 비추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관란정기 (觀瀾亭記) 君子行素乎患難而不失其正者 死而已 當死而死 則心安而德全 是之謂有重於泰山也 亦有以時則必死 而以地則必不死 不求生以害仁 而生有難於死者 或死或生 殊塗而同歸 要盡其義之所至 而蒙難以正則一 是固無入而不自得者也 奧若莊光之世 爲舊君死者 前後數百人 而六臣最著焉 有全身自在 不被崑岡之炎 而能守鐵石之貞衷 勵松柏之苦操 視鼎鑊其如歸 蹈參夷而不恤 與六臣異體而同腸者 卽所謂生六臣也 集賢殿直提學元先生昊 乃生六臣中一人耳 先生知有靖難之變 謝病歸鄕 逮端廟遜國于越 先生亦竄身於越之府西思 乃坪而宅焉 前臨二水合流 有石壁特立于其上 卽其地而臺焉 又亭于臺傍 而曰觀瀾 默寓朝宗之義 每晨自亭而臺 東望行在 呑聲而歔欷 隨日而入 不以風雨寒暑而掇焉 里中有孀婦 日洴澼于川邊 每往 先生已出臨矣 其女怪而問 先生泫然曰 烈女不更二夫 忠臣不事二君 吾君方在越中 故出而展望美之懷耳 其女泣曰 意將不日改適 臨流浣衣者 卽爲此也 妾雖卑賤 聞公言 自然感激 不忍爲此行 遂泣下如雨 全節而畢生云 逮丁丑之變 先生服方喪三年 坐必東向 臥必東首 遂不出戶庭而終焉 余遊 越中 得其事甚悉 屋毀已久 而尙傳爲元先生遺墟 老石蒼秀 蘸影于水心 想像先生英靈 赫赫在亭臺林壑之間 乘雲御風 日朝于仙寢 與六臣者 列侍珠丘玉欄之傍也 嗚呼 並時之東峯, 秋江諸賢 毀形以逃世 登山以採薇 而俱是韋布少年耳 其出處行藏 由己而不由人 若先生者 已登顯仕 蜚英聲矣 旣不同死于丙子之禍 則窄逕窘步 不自蹎跌者 斯已難矣 而用能見幾而作 不俟終日 因之潛隨荊蠻之行 瞻依日月之光 自伸其所在致死之義 是所謂遠不違君 死不忘國者歟 經夷險而一節者歟 六臣之死 死非得已 先生之生 生亦得所 然死則固不重於生 生且無愧於死 俱得實理于心 而成就一個是而已 然六臣之一時殉國 卽所云慷慨殺身 先生之沒身自靖 卽所云從容就義 如先生之爲者 詎不尤難哉 天地變化而我得其正 豈不誠大人哉 村婦 至無知也 纔服一言 卽發善心 臨再嫁而自悔 完一節而靡他 苟不因得聲氣之相感 孰能與此 其入人深而化人速者 殆影響不翅 其非以不以言而以身歟 嗚呼 靖難諸人 聞此寡婦之行者乎 曾謂朝廷之君子 不如下邑之賤女乎 洪直弼
키워드 충북의 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