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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東遊記
분류 산수유기

내용

저자는 송시열의 9대손으로 伯父인 守宗齋 宋達洙에게 수학하였고, 立齋 宋近洙의 지도를 받으며 家學을 계승하였다. 41세에 經學으로 천거를 받은 이후 성균관 좨주, 이조 참판, 대사헌에 이르는 많은 관직을 제수받았고 고종으로부터 끊임없이 부름을 받았으나, 이를 모두 사양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채 평생을 저술과 강학에 힘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고종을 직접 면대하여 乙巳五賊을 처단하고 조약을 폐기할 것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고종에게 올리는 遺疏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1906년에 동생 宋秉珣이 지은 行狀에 따르면, 저자의 4대 저술로 「近思續錄」, 「東儒淵源錄」, 「武溪謾輯」, 「東鑑綱目」을 꼽았고, 文集으로는 遺稿 몇 권이 집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저자의 문집은 행장에 언급된 家狀草稿를 바탕으로 송병순과 鄭璣淵, 安圭容 등의 문인에 의해 1907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心石齋集」(宋秉珣)에 수록되어 있는 송병순의 年譜에는 1907년에 「淵齋集」의 간행을 보기 위해 三嘉에 갔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저자의 문인들이 세상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저자의 遺文이 혹시라도 散逸될 것을 걱정하여 급히 문집의 간행을 도모하였으며, 처음에 茂朱의 棲碧亭에 刊所를 설치했으나, 곧 곤란한 사정이 생겨 간소를 삼가의 滄溪로 옮겼다고 하였다. 이때에 간행된 것이 바로 목판으로 간행된 53권 24책의 초간본이다.《초간본》 이 본은 현재 규장각(古3428-146),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918),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811.98/송병선/연) 등에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 간행 이후 75년이 지난 1981년에 증손 宋忠鎬와 士友들이 大田의 龍洞書院에서 「淵齋集」을 영인하였다. 영인본에는 초간본에 실리지 않은 「挽祭編」, 「武溪謾輯」, 「近思續錄」, 「浿東淵源錄」, 「靑巴日記」, 「溪山淵源錄」을 실었다. 본서의 저본은 1907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 본 영인 저본 중 권6의 제25판에 권5의 제25판이 잘못 結冊되어 있으므로 동일본인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으로 대체하였으며, 권41의 제5판은 卷次가 ‘四十二’로 誤記되어 있다.
키워드 영춘, 단양, 청풍, 제천, 사군산수, 宋秉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