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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丹陽山水記
분류 산수유기
시대/생몰년 1790년(정조14) 가을
형태 연활자본(鉛活字本)
언어 한문
지역 단양
자료출처 與猶堂全書 제1집 「詩文集」 제14권

《여유당전서》는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저작집이다. 다산 사후에 필사본으로 전해 오던 저술들이 처음으로 완간된 것은 1938년이었다. 1936년의 다산 선생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1934년부터 간행에 착수하여 1938년에 완간되었다. 5개년에 걸친 이 간행 사업은 다산의 외현손(外玄孫) 김성진(金誠鎭)이 편집하고 정인보(鄭寅普), 안재홍(安在鴻) 두 분의 교열을 거쳐 154권 76책의 연활자본(鉛活字本)으로 완성되었다. 발행처는 신조선사(新朝鮮社)이다. 다산의 저작집은 그동안 《여유당집(與猶堂集)》, 《열수전서(洌水全書)》 등의 이름으로 불려 오다가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의 간행을 계기로 《여유당전서》로 통칭되고 있다. ‘여유당’은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 생가의 당호(堂號)이다.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가 출간되기 이전에도 《목민심서(牧民心書)》(1902년), 《흠흠신서(欽欽新書)》(1908년), 《경세유표(經世遺表)》(1914년) 등 다산의 저술들이 개별적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전집의 형태로 묶여서 출간된 것은 신조선사본이 처음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조선사본이 출간됨으로써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다산 연구가 시작되었고 ‘다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60년에 문헌편찬위원회에서 《민보의(民堡議)》를 추가하여 신조선사본을 4책으로 축쇄영인(縮刷影印)한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를 출간하였고, 1969년에는 경인문화사에서 신조선사본을 다시 6책으로 축쇄 영인한 바 있으며, 1985년에는 여강출판사에서 신조선사본을 실물대(實物大)의 크기로 영인하여 20책을 출간하였다. 그동안 이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를 저본으로 하여 2,000편이 넘는 학술 논문과 300여 편의 석ㆍ박사 논문, 그리고 100여 권의 연구 저서가 출간되었으니 신조선사본이 기여한 공(功)이 실로 크다고 하겠다.
키워드 단양, 사군산수, 李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