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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四郡行記
분류 산수유기
시대/생몰년 1788년(정조12) 9월 13~10월 8일
형태 사본(寫本)
언어 한문
지역 서울-광주-이천-충
자료출처 石泉遺稿 권1

저자는 부친인 宛丘 申大羽의 가르침과 외증조부인 霞谷 鄭齊斗의 陽明學 淵源을 이어받은 이른바 江華學派에 속하는 少論系 인물이다. 젊어서는 양명학으로 기울어졌으나 樸學 즉 漢代의 經學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고, 正祖의 崇文 정책과 당시 청나라 乾隆, 嘉慶 연간의 訓詁學派의 영향을 받아 「詩經」, 「尙書」, 「老子」 등을 고증하였고, 筆法에도 정통하여 〈原碑〉, 〈漢隷碑〉 등을 남겼다. 「石泉遺集」 後集 권8에 실려 있는 日乘에 의하면, “1828년 10월에 아들 申命淵이 저자가 手編한 遺藁를 3권으로 謄寫하였고, 12월에는 遺事를 지었으며, 1829년 9월에는 저자가 知舊들에게 준 편지를 기록하여 1권으로 만들었고, 1830년 3월에는 家中 往復書를 기록하여 2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저자의 사후에 아들 신명연이 중심이 되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편지 등을 수습하여 문집을 편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 刊本은 없고 寫本 2종이 남아 있다. 「石泉遺集」과 「石泉遺稿」가 그것이다. 「석천유집」은 원래 學士 成樂緖가 저자의 후손에게서 購得한 「石泉集」에서 今西龍이 鈔寫하여 1931년에 필사한 책으로 현재 日本 天理大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은 前集 3卷, 後集 8卷 合 6冊으로, 전집은 권1에 序跋, 권2에 傳述, 雜述, 권3에 祭文, 事狀, 後集은 권1~2에 雜著, 經義, 條對, 권3~7에 簡牘, 권8에 日乘이 수록되어 있다. 제1책(前集 권1~3)은 신명연이 등사한 遺藁 3권이고, 제2책(後集 권1~2)은 雜著, 經義, 條對이다. 書牘은 제3책(후집 권3)에는 父兄에게 올린 것, 제4책(후집 권4)에는 弟, 아들, 숙부에게 준 것, 제5책(후집 권5~6)에는 친척과 知舊에게 준 것, 제6책(후집 권7)에는 知舊에게 준 것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稻葉誠一이 교정하고 표점을 하여 「朝鮮學報」 29집~34집에 影印하여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본서의 저본인 「石泉遺稿」 3권 3책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鄭寅普가 지은 〈石泉遺稿記〉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석천유고」는 처음에 「私藁」 1책, 「記拙」 2책, 그리고 鳥獸, 艸木, 蟲魚의 명칭을 적은 小冊子로서 卷次가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이것을 정인보가 卷1, 2, 3으로 편차하고 소책자는 권3에 소속시켰다. 그런데 이 중 「기졸」 1책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가 분실하자 全集을 구하여 분실된 책 내용을 산삭할 것은 산삭하고 남아 있는 2책의 내용 이외에 저자의 작품을 모두 기록하고 또 저자의 手書와 文草 몇 편을 더 보태어 1책으로 만들었다. 이에 다시 「석천유고」가 3권 3책으로 되었는데, 분실하기 전보다 내용은 더 좋아졌으나 저자의 筆法을 보여 주는 手藁로는 이전만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을 서울의 崔南善이 소장하게 되었고, 이를 저본으로 하여 朝鮮總督府 中樞院에서 1938년 10월에 謄寫를 마쳤는데, 冊3 뒤표지에 原本 所藏者, 原本刊寫別, 謄寫年月, 校正者가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은 현재 규장각(古3436-28)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본문에 줄을 치고 그 옆에 내용을 수정하거나 본문 상단에 주석을 단 곳이 많다. 권1의 〈原碑〉의 본문 내용 중 “七年春釋漢隷碑文”을 “歲丁卯二月中手書漢碑諸篇”으로 교감하였고, 또한 권1의 〈四郡行記〉의 본문에 ‘缺’ 자로 된 부분이 있고, 권2의 〈先妣遺事〉의 본문에 괄호를 친 부분이 많은데, 이에 대한 상단의 주석에 “以下括弧依草本”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 문집은 저자의 초본을 다시 轉寫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저자는 「詩次故」, 「書次故」, 「易次故」, 「老子旨略」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이 중「시차고」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역차고」는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崔南善 소장본을 1938년 朝鮮總督府 中樞院에서 謄寫한 「석천유고」로서 규장각장본이다.
키워드 제천, 영춘, 단양, 사군산수, 申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