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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山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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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산수유기 |
시대/생몰년 | 1751~1753년(영조27~29) |
형태 | 괘인사본(罫印寫本) |
언어 | 한문 |
지역 | 단양 |
자료출처 | 단릉유고(丹陵遺稿) 권 11 |
저자는 생전에 시기별로 자신의 시문을 小集 형태로 엮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 사후 아우 李運永(1722~1794)이 1759년에 지은 제문에서 “欲使愚弟收拾殘藁之詩文 不至於散亡”이라는 언급을 하였으며, 또 1761년 지은 壙記에 詩文 약간 권이 가장되어 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운영이 遺文의 정리에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저자의 벗 평안도 관찰사 金鍾秀가 유문을 刪定하고 자신과 형 金鍾厚의 발문을 추가하여 1779년 목판으로 「丹陵山人遺集」을 간행하였다. 《초간본》 이 본은 현재 규장각(奎4802), 장서각(K4-5881) 등에 소장되어 있다. 분량은 3권 1책이며, 권上에는 辭(3), 詩(39題), 권中에는 시(50제), 권下에는 文(23)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는 시체와 상관없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문은 명시적이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문체별로 구분되어 있다.
이 외에 규장각에 15권 4책의 필사본 「丹陵遺稿」(奎12102)가 전하고 있다. 별도의 서발문은 없으나 시는 詩錄별로, 문은 문체별로 편집되어 있고 부록문자도 포함하고 있어 초간본보다 비교적 완정한 문집의 형태를 띠고 있다. 수록 내용 역시 대폭 증가하였는데 연작시의 경우 초간본에서 누락된 것들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개별 작품의 제목은 대체적으로 초간본에 비해 상세한 편이나, 초간본의 〈黃鵠一去靑冥無極印章贊〉이 〈黃鵠贊〉으로 축약된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일부 발견된다. 필사 시기는 권15 말미에 金海柱와 저자의 조카 李羲淵(1755~1820)이 1780년 저자의 부인 경주김씨를 위해 지은 제문 2편이 첨부된 것으로 보아 그 이후로 추정된다.
본서의 저본은 書寫 경위가 불분명한 罫印寫本으로 규장각장본이다.
키워드 | 단양, 사군산수, 李胤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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