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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遊三仙巖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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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산수유기 |
시대/생몰년 | 1716(숙종42) |
형태 | 목판본(木版本) |
언어 | 한문 |
지역 | 단양 |
자료출처 | 遯窩遺稿 권3 |
저자는 小北의 名門으로 南人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였으니, 상소를 통해서도 이런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肅宗 중엽 이후 사실상 정치적 위상을 차지하기 못했기 때문에 世德과 명망에도 불구하고 宦路가 평탄하지는 못하였다. 저자의 문집은 3권 3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으나 序跋이나 관계 기록이 없어 편찬과 간행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고 다만 몇 가지 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정할 뿐이다.
저자의 묘표를 지은 孫 任希聖의 글에 의하면 저술한 詩文이 자못 散逸되어 약간 권만이 家藏되어 있다고 하였다.(任希聖 撰, 在澗集 卷5) 본문에 조부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되었다고 했으므로 본 墓表를 지은 시기는 대략 1761년경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까지 문집이 간행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저자의 문집과 부친 任相元의 「恬軒集」은 같은 목활자본이고 板式이나 글자의 모양, 마모도 등이 흡사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765년에 쓰여진 任相元의 行狀에는 「恬軒集」이 간행되어 세상에 행해진다는 기사가 있으므로(任希聖 撰, 在澗集 卷6) 이 두 문집이 모두 1761년 이후 1765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본집의 각 권마다 첫판에 “任珖之印”이란 도장이 찍혀 있는데 이는 저자의 아들 任珖이 본집의 수집과 편찬에 관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任珖의 생몰연도가 1686년~1743년이므로 위의 묘표와 참고해 볼 때 생전에 간행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손자인 任希聖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본집은 아들 任珖의 수집 편차를 거쳐 孫 任希聖이 1760년대에 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초간본》 초간본은 현재 규장각(奎6990),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386)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760년대에 활자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키워드 | 단양, 사군산수, 任守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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