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石窟記
분류 산수유기
시대/생몰년 영춘현감 재임시(1692~1696)
형태 목판본(木版本)
언어 한문
지역 영춘
자료출처 荷塘集 권4

저자는 그 학문과 명성에 비해 저술을 즐기지 않아 남아 있던 遺文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저자의 시문은 다른 문집과 달리 많은 刪節을 가하지는 않은 듯하다. 저자의 6촌 형제인 權斗經이 1723년(경종 3)에 지은 행장에 “아들 權苾과 權薲이 공의 詩文 10여 권을 수습하여 안목을 갖춘 이에게 편차와 校讎를 부탁하려고 하고 있다.” 하였으니, 저자의 사후 아들들이 10여 권의 시문을 수습하여 이를 당시 南人 학자로 이름난 訥隱 李光庭에게 편차를 부탁하였던 것이다. 李光庭이 1753년(영조 29)에 쓴 序文을 통해 살펴 보면, 이광정은 먼저 11권으로 저자의 유문을 편차하였고, 저자의 아들과 族弟인 權萬 등이 거듭 교수해 줄 것을 요청하자 다시 刪削을 가하여 정리하였는데 그것이 현재의 原集 8권이다. 그 후 南野 朴孫慶이 원집에서 누락된 詩文과 다시 수습한 遺文 등을 교정하여 續集 2권으로 편차해 두었는데 중간에 집안의 喪事가 겹치는 등 家禍가 잇달아 미처 간행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家藏해오기만 하다가 1810년(순조 10) 저자의 5대손인 權載德이 주관하여 원집 8권과 속집 2권을 목판으로 간행하고 金翰東의 발문을 받아 붙였다. 金翰東은 저자의 妹兄인 金聲久의 증손이다.《초간본》 현재 규장각(古3428-526), 장서각(4-6627),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07-77),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중 장서각장본에 김한동의 발문이 실려 있다. 본서의 저본은 1810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키워드 영춘, 단양, 사군산수, 權斗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