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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遊四郡錄
분류 산수유기
시대/생몰년 1692년(숙종18) 3월 7~26일 사군 유람: 3월 11~23일
형태 괘인사본(罫印寫本)
언어 한문
지역 여주-충주-청풍-단
자료출처 養窩集 책13

저자는 白沙 李恒福의 증손으로 久堂 朴長遠의 문인이며 朴世采, 尹拯, 南九萬 등을 종유하였다. 驪州에 살면서 경학을 연구하여 윤증에게 物格說에 뛰어난 이론을 갖추고 禮書에 박통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자의 유적은 소론의 중진인 저자의 아들 雲谷 李光佐(1674~1740)가 行錄과 遺事를 지어 家藏하였고, 龜川 李世弼의 손자인 李宗白의 요청으로 樗村 沈錥이 1742년경에 묘갈명을 지었다. 이항복의 10세손인 橘山 李裕元(1814~1888)의 저서 「林下筆記」 제27권 春明逸史의 〈兩賢文集〉에 梅山 洪直弼이 이유원의 부친 李啓朝에게 이세필의 문집과 저자의 문집을 베껴가게 해 달라고 청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또, 이유원의 문집 「嘉梧藁略」에는 저자의 행장과 문집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행장에는 “所著有詩文若干卷 經禮說三卷 喪服問答二卷”이라 하여 저자의 遺文을 개략하였고, 서문에는 “先生所著文畧干卷 得之巾衍”이라는 구절이 있다. 위의 이유원의 글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계조가 소장한 저자의 문집은 간행본이 아닌 稿本이었으며, 서문을 지은 것으로 보아 당시 어느 정도 문집의 체제를 갖춘 定稿本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광좌가 1755년에 일어난 나주벽서사건으로 관직이 추탈되는 등 家禍의 영향과 후손의 零替로 인하여 저자의 문집이 간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저자의 문집은 불분권 13책의 罫印寫本으로 규장각(奎3416)에 소장되어 있다. 序跋이나 寫記 등이 없어 문집의 편성 과정 및 轉寫 경위가 불분명하며, 여러 사람에 의해 다른 필체로 필사되어 있다. 다만 책1 말미에 이광좌가 1739년에 올린 상소문 2편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이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필사 연도 미상의 零本(4책, 13책)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육당D1-A201)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轉寫經緯가 불분명한 괘인사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키워드 사군산수, 李世龜